글쓰기의 절차 - 좋은 글의 요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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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 공부/글쓰기의 이론와 실제

글쓰기의 절차 - 좋은 글의 요건

by Life K-Drama 2022. 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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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글은 많은 생각과 연습에 의해서만 잘 쓸 수 있다. 예를 들어 보자. 그냥 '먹었다'고만하면 다른 사람들은 무엇을 먹었는지 알 수 없다. 또 어디서 먹었는지도 알 수 없다. 그러므로 '먹었다'는 사실로부터 더 알고 싶은 것이 많아진다. 무엇을 먹었는지, 어디서 먹었는지, 맛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혼자 먹었는지, 다른 사람이랑 같이 먹었는지, 분위기는 좋았는지, 먹고 난 느낌은 어떠하였는지 이런 것들이 알고 싶어 진다. 글을 쓰는 연습이란 이렇게 다른 사람들이 알고 싶어 하는 것을 어떻게 전하는 가를 생각하고 쓰는 일이다.

 

1) 해야 할 말, 하지 않아야 할 말을 구분하자.

 글을 지을 때 가장 저지르는 쉬운 잘못은 내용을 충분히 전달하지 않는 것이다. 글 쓰는 이 자신은 이미 다 알고 있기 때문에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기 쉽다. 또는 알겠거니 하고 생각하여 말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독자는 지은이도 잘 모르고 글도 처음 대하기 때문에 사실 아는 바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사전 정보가 필요한 경우에는 빠짐없이 그 정보를 전해주어야 한다. 그것이 글 읽는 사람에 대한 예의일 뿐만 아니라,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명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이런 잘못은 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글로 쓸 때 잘 나타난다.

  예컨대 가족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면, 가족에 대한 소개를 먼저 간단하게라도 해야한다. 그렇지 않고 갑자기 미국에 가 있는 형이나 오빠, 혹은 치매 걸린 할머니가 등장하게 되면, 긁읽는 사람은 앞에서 말한 내용을 다시 돌이켜 보아야 한다. 가족의 이야기란 가족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가에 따라 의미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굳이 말할 필요가 없는 사실들을 말하는 경우도 있따. 예컨대 사교생활로서 당구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 예술 당구의 기술에 대해 설명하는 경우를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경우 당구 기술은 불필요한 정보이다. 자신이 예술 당구를 할 줄 알거나 혹은 방법을 안다고 하더라도, 사교 당구에 대한 글에서는 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다른 사람들에게 드러내고 싶은 욕구를 이기지 못하면 글은 주제를 알 수 없는 글이 되어 버린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말해야 할 내용과 말할 필요가 없는 내용을 명확하게 구분하여야 한다. 이것을 글의 통일성이라고 한다.

 

2) 조리있게 서술하자.

  두 번째로 주의할 점은 말해야 할 내용을 조리 있게 서술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런 점에서 글은 하나의 문장에 비유할 수 있다. "나는 오늘 아침에 밥과 된장찌개를 먹었다. 그리고 후식으로 과일을 먹었다." 이 문장을 살펴보면 순서를 바꾸어도 상관이 없는 것과 순서를 바꾸면 안 될 것이 있다. 먼저 무엇을 바꿀 수 있는지 생각해보자. '오늘 아침'과 '나는'은 바꿀 수 있다. "오늘 아침에 나는 밥과 된장찌개를 먹었다." 또 '밥'과 '된장찌개'의 위치도 바꿀 수 있다. "나는 오늘 아침에 된장찌개와 밥을 먹었다." 그러나 바꿀 수 없는 것 혹은 바꾸기 어려운 것이 있다. 우리글은 주어, 목적어, 서술어의 순서로 나와야 자연스럽다. 특별히 수사적인 이유가 있지 않는 한, 이 순서는 바뀌지 않는다. 그러므로 주어인 '나는', 목적어인 '밥과 된장찌개를', 그리고 서술어인 '먹었다'의 순서는 바뀌지 않는 것이 좋다.

  또 바꿀 수 없는 것이 있다. '밥'과 '된장찌개'는 바꿀 수 있지만, '된장찌개'와 '과일'을 바꾸어서는 곤란할 것이다. "나는 오늘 아침에 밥과 과일을 먹었다. 그리고 후식으로 된장찌개를 먹었다." 굳이 그런 순서로 먹을 수 없는 것은 아니겠찌만, 그러나 이상하다. 이 경우 왜 상식과는 다르게 행동했는가에 대해 설명을 해주어야만 한다. 이처럼 말할 내용의 순서를 생각하지 않으면, 된장찌개와 과일의 위치를 바꾸어버린 것과 같은 이상한 글이 나오기도 하는 것이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묘사문을 쓸 떄 몇 가지 방법이 있다. 산을 묘사하면서 이동 시점을 사용한다고 하자. 그렇다면 산 아래서부터 시작해서 산 위로 올라간다든지, 아니면 그 반대의 순서를 택하게 될 것이다. 이런 순서가 자연스럽다. 또 고정 시점을 취한다고 하더라도 산의 전체의 모습을 먼저 말하고 세부로 들어가거나, 아니면 산의 일부를 그렸다가 다시 전체의 모습을 그렸다가 한다면 글을 읽는 사람은 도대체 그 산에 대해 어떤 상을 가질 수가 없을 것이다.

  가족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면 먼저 우리 가족이 몇 명인가부터 이야기 하도 할아버지나 할머니,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형제의 순으로 설명을 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 한 사람 한 사람씩 설명해 나간다면 독자는 도대체 가족 소개가 언제 끝날지 알 수 없게 된다, 또 할아버지, 오빠(혹은 누나, 형, 동생), 어머니, 아버지, 할머니, 나의 순서로 이야기를 한다면 글을 읽은 사람은 종잡기 어렵게 된다. 이렇게 이미 정해져 있는 내용이 적절한 순서로 배치되어 있는 경우, 우리는 글에 긴밀성이 있다고 말한다.

  바로 이 두 가지, 긴밀성과 통일성이 글을 지을 때 가장 중요한 요건이다. 이 외에도 정확성, 명료성, 강조성 따위의 요건의 있다. 다음 두 문장을 비교해보자.

  "어떤 사람이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라고 했다는 말을 들은 것 같기도 하다."

  "고대 희랍의 의학자 히포크라테스는 '인생을 짧고 예술은 길다'고 말했다."

  앞의 문장은 정확한 내용을 전달하고 있지도 않고, 그렇다고 명료하게 말하고 있지도 않다. 반면 뒤의 문장은 정확한 내용을 명료하게 전달하고 있다. 글을 지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글은 정확한 내용을 전달해야 한다. 그리고 그 전달하는 내용은 명료하게 표현되어야 한다.

  이상의 수필 가운데 [권태]라는 잘 알려진 수필이 있다. 물론 주제는 '권태'이다. 그런데 권태라는 주제로 학생들에게 글을 지어 보라 하면, 대개는 별 내용이 없다. 그저 심심하다, 매일매일이 똑같다, 정도의 말만 하게 된다. 이상이나 우리는 모두 권태를 느끼고 있기는 하지만, 다른 점은 이상은 그 권태라는 느낌을 정확하게 포착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권태]에서 '권태'라고 말하기보다는 권태로운 일상을 보여준다. 한 대목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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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아침을 먹었다. 할 일이 없다. 그러나 무작정 널따란 백지 같은 '오늘'이라는 것이 내 앞에 펼쳐져 있으면 무슨 기사라도 좋으니 강요한다. 나는 무엇이고 하지 않으면 안된다.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연구해야 된다. 그럼 - 나는 최 서방네 집 사랑 뒷마루로 장기나 두러 갈까. 그것 좋다.

  최 서방은 들에 나갔다. 최 서방네 사랑에는 아무도 없나보다. 최 서방의 조카가 낮잠을 잔다. 아하-- 내가 아침을 먹은 것은 열 시나 지난 후니까 최 서방의 조카로서는 낮잠 잘 시간에 틀림없다.

  나는 최 서방의 조카를 깨워가지고 장기를 한 판 벌이기로 한다. 최 서방의 조카와 열 번 두면 열 번 내가 이긴다. 최 서방의 조카로서는 그러니까 나와 장기를 둔다는 것 그것부터가 권태다. 밤낮 두어야 마찬가질 바에는 안 두는 것이 차라리 나았지 - 그러나 안 두면 무엇을 하나? 둘밖에 없다.

  지는 것도 권태어늘 이기는 것이 어찌 권태 아닐 수 있으랴? 열 번 두어서 열 번 내리 이기는 장난이란 열 번 지는 이상으로 싱거운 장난이다. 나는 참 싱거워서 견딜 수가 없다.

  한 번쯤 져 주리라. 나는 한참 생각하는 체하다가 슬그머니 위험한 자리에 장기 조각을 갖다 놓는다. 최 서방의 조카는 하품을 쓱 한 번 하더니 이윽고 둔다는 것이 딴청이다. 의례히 질 것이니까 골치 아프게 수를 보고 어쩌고 하고 싫다는 사상이리라. 아무렇게나 생각나는 대로 장기를 갖다 놓고는 그저 얼른 끝을 내어 져줄 만큼 져 주면 이 상승 장군은 이 압도적 권태를 이기지 못해 제물에 가버리겠지 하는 사상이리라. 가고 나면 또 낮잠이나 잘 작정이리라.

  나는 부득이 또 이긴다. 인제 그만 두잔다. 물론 그만 두는 수밖에 없다.

  일부러 져 준다는 것조차가 어려운 일이다. 나는 왜 저 최 서방의 조카처럼 아주 영영 방심 상태가 되어 버릴 수가 없나? 이 질식할 것 같은 권태 속에서도 사세(些細)한 승부에 구속을 받나? 아주 바보가 될 수는 없나?

 

  화자인 나도 권태롭고, 그 권태로움이 다른 사람까지 권태롭게 만들고 있음이 잘 드러난다. 명료함이란 대상에 대한 정확한 인식에서 뒤따르는 것이다. 글을 보다 보면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모를 글이 있다. 글의 내용이 명료하지 않은 것이다. 자신이 써야 할 내용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지 못하면 명료한 글이 나올 수 없다. 정확하게 알고 있지 못하니, 두루뭉수리로 적당 적당 하게 넘어간다. 글을 읽는 사람도 또 그렇게 넘어간다. 그리고 나면 읽으나마나 한 글이 되고 마는 것이다.

  이제 이런 점을 염두에 두면서 구체적으로 글을 써 나가는 과정을 단계별로 나누어 살펴보도록 하자. 한 편의 완성된 글이 쓰여질 때까지는 대체로 세 단계를 거치게 된다. 첫 번째 단계를 주제를 정하는 단계이다. 그리고 두 번째 단계는 글을 쓰기 위한 준비를 하는 단계이고, 세 번째 단계는 실제로 글을 쓰는 단계이다. 이 세 단계는 사실 엄밀하게 구분되어 있지 않다. 실제로 글을 쓰다가 준비 단계로 되돌아올 수도 있고, 준비 단계에서 머릿속으로나마 글을 쓰기도 하는 것이다. 다만 일반적인 규범으로서 세 단계를 설정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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