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의 말씀, 논어(論語) - 부자(富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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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 공부/about 중국

공자의 말씀, 논어(論語) - 부자(富者)

by Life K-Drama 2022. 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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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가 되는 것에 관하여

흔히 유가(儒家) 전통사회에서 신분의 등급을 나누어서 말할 때, 사농공상(士農工商)이라고 하여 상업에 종사하는 이를 가장 낮게 여기는 경향이 있었다. 공자는 공부하는 것을 가장 중시하였으니 학문에 정진하는 것을 주로 하는 사(士)를 가장 앞에 두었으며, 상대적으로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업으로 하는 상인(商人)이 떳떳치 못한 계급이 되어 버렸던 것이다. 그러나 사농공상이라는 말이 생긴 것은 공자의 시대가 아니다. 유학이 관념론에 빠지기 시작한 송(宋)대 이후이다.
그런데 과연 공자는 부자가 되지 말라고 했을까? 아니다. 다음의 글들을 보면서 공자는 부자가 되는 것을 어찌 여겼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1) 부자보다는 정의를 위하여
見義不爲, 無勇也. [論語·爲政] / 見利思義, 見危授命. [論語-憲問]
견의불위, 무용야. [논어-위정] / 견리사의, 견위수명. [논어-헌문]

- 번역:
정의를 보고도 실천하지 않는 것은 용기가 없는 것이다. / 이익됨을 보고는 바른가를 생각하고, 위태로움을 보고는 목숨을 바친다.

- 어휘 풀이:
·義(의) : 흔히 정의(正義)를 뜻하는 이 글자는 도끼의 뜻인 '아(我)'와 희생(儀性)의 뜻인 '양(羊)'이 결합한 형태로서 신에게 제물을 올려 신의 뜻에 거스르지 않는다는 것이라고도 하고, 『설문해자 (說文解字)』에서는 ‘자신의 위엄(己之威儀)'이라는 뜻으로 풀었다. 이 둘을 아울러서 풀어보면, 정의란 하늘의 뜻을 세상에 펴는 위엄이 있는 왕이라는 뜻이 된다. 그러니 앞에서 임금 왕(王)자가 도끼를 형상화한 ‘힘이 있는 자'였듯이 옛날에도 정의라는 것은 힘 있는 자의 전유물이었던 듯하다.

- 해설:
공자는 사랑(仁]과 정의[義]의 실천을 중시한다. 그러므로 정의를 보고도 실천하지 않는 것에 대하여 용기 없는 일이라고 한 것은 참으로 당연한 말씀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자신의 희생을 통한 인의 실현을 말한 살신성인(殺身成仁)이야말로 최고의 품성인 것이며, 「이인(里人)」편에서는 “군자는 의(義)에 밝고, 소인은 이(利)에 밝다.(君子喻於義, 小人喩於利.)”라고 한 것도 이 같은 취지에서 밝힌 것이다.
그렇다면 이 사랑과 정의의 실천에 상반되는 이(利)의 추구에 대해 서는 당연히 물리쳐야 한다고 여겼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도 있지만, 완전히 그런 것만은 아니다. “이익됨을 보고는 그것이 바른가를 생각해야 한다.”라고 한 것에서 바로 정의로운 이(利)도 있다는 것을 인정 한 셈이다. 즉 정당한 이익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취할 수 있는 것임을 밝힌 것이기도 하다. 돈이 무조건 부정적인 것만은 결코 아니라는 뜻이다. 어쨌거나 가난을 구제하는 것을 통해서도 사회에서 나름의 큰 몫을 다하는 것이 될 수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2) 안빈낙도의 삶을 위하여?!?!?!?!
子曰: “飯疏食, 飮水, 曲肱而枕之, 樂亦在其中矣. 不義而富且貴, 於我如浮雲.” [論語-述而]
자왈: '반소사, 음수, 곡굉이침지, 낙역재기중의. 불의이부차귀, 어아여부운.” [논어·술이]

- 번역:
공자께서 “거친 밥을 먹고, 물을 마시며, 팔을 굽혀 베더라도, 즐거움이 역시 그 가운데에 있다. 옳지 못하면서 부귀한 것은, 내게 있어서 뜬구름과도 같은 것이다."라고 하셨다.

- 어휘 풀이:
• 食(사) : 이 글자는 동사로 읽을 때에는 '먹을 식'이지만 명사일 때에는 밥 '사'로 읽는다.

- 해설:
공자는 부자가 되는 것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어떤 생각을 가졌던 것일까? 공자가 이런 말을 한 것을 보면 거짓말을 하지 않고 욕심부리지 않는 평안한 삶을 추구하였구나 하는 느낌이 든다. 아무런 부조리나 사사로운 욕심에 얽매이지 않고 살아가려는 삶의 태도에서, 모두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귀의 길로 냅다 달려 나아가려고만 했던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계기라도 삼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이렇듯 흔히 공자의 유가 사상이 안빈낙도(安貧樂道)나 청빈(淸貧)의 삶을 지향했다고 여겨서, 오늘날과 같은 물질 만능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더더욱 물질 만능의 폐해 속에 빠져드는 것을 경계하면서 공자의 말씀을 되뇌곤 하는데, 공자가 반드시 물질을 부정적으로만 본 것은 아니다.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귀감이 될 수 있는 정의로운 부자라는 의미에서 '청부(淸富)'의 개념을 일깨워 주었다고 할 수 있다.
「학이(學而)」 편에서 “자공이 '가난하면서 아첨하지 않고 부자이면서 교만하지 않은 것이 어떻습니까?”라고 여쭙자, 공자는 '괜찮기는 하지만, 가난하지만 즐길 줄 알고 부자이면서도 예를 좋아하는 것만은 못하다.'라고 하셨다.(子貢曰, 貧而無諂, 富而無驕, 何如? 子日, 可也. 未若貧而樂, 富而好禮者也.)”라고 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가난한 이와 부자가 삶의 자세를 어찌 가져야 하는가를 밝힌 것이다. 가난하다면 비굴해지기 쉬우니 아첨하지 말 것이며, 부자라면 거들먹거리기 쉬우니 그로 인해서 교만을 부리지 말라는 것이다. 물론 가난하건 부자이건 아첨과 교만 정도만을 하지 않는 것뿐만 아니라 부자가 되는 것에 대하여 무조건 부정적인 입장만은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공자에게 있어서는 가난하다거나 부자이거나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며, 가난하다면 그렇듯 가난하게 된 것에 대하여 기꺼이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하며, 부자라면 역시 예를 잘 실천하여 자신의 직분을 잘 지킬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3) 그래도 먹고살아야..

子適衛, 冉有僕. 子曰: “庶矣哉!” 冉有曰: “旣庶矣, 又何加焉?” 日: “富之.” 日: “旣富矣, 又何加焉?” 日: “敎之.” [論語-子路]
자적위, 염유복. 자왈: “서의재!” 염유왈: “기서의, 우하가언?” 왈: “부지.” 왈: “기부의, 우하가언?” 왈: “교지.” [논어-자로]

- 번역:
선생님께서 위나라에 가셨는데, 염유가 수레를 몰았다. 선생님께서 "많기도 하구나!"라고 하셨다. 염유가 “이미 백성이 많으면 또 무엇을 보태야겠습니까?”라고 하니, “부유하게 해주어야 한다.”라고 하셨다. "이미 부유하다면 또 무엇을 보태야겠습니까?”라고 하니, "가르쳐야 한다.”라고 하셨다.

- 해설:
여기에서 공자는 스스로와 제자들에게는 인간다운 면모의 발현을 위해서는 반드시 항시 공부해야 할 것을 강조하였지만, 위정자들이 일반 백성에 대해서는 역시 먹고살게 해주어야 하는 것이 최우선의 임무임을 밝힌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공자가 현실적인 삶을 중시한 것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인간이 굶고서야 아무것도 할 수 없듯이, 배가 부른 다음에야 백성을 짐승과는 다르게 하는 수단인 교육을 통해서 사람다운 실마리를 계발해야 한다고 한 것이다.
그렇지만 공자는 단순히 부자가 되라고 한 것은 아니다. 공자는 「술이(述而)」 편에서도 “부자 되는 것이 애써서 될 수 있는 것이라면 나는 채찍을 잡고 수레를 모는 자라도 나 역시 그것을 하겠지만, 만약에 추구할 수 없는 것이라면 내가 좋아하는 것을 따르겠다.(富而可求也. 雖執鞭之士. 吾亦爲之. 如不可求, 從吾所好.)”라고 하였듯이, 공자 스스로는 부귀한 삶을 추구하기보다는 정의로운 삶을 택하겠다고 하였다. 즉 올바른 방법을 통해서 가능한 것이라면 몰라도 옳지 못한 방법을 통해서 부자가 되는 것은 진작 접어두고자 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경지가 공자쯤 되어야 가능한 것일 터인데,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도 가능할까? 한 푼이라도 더 챙겨서 내 배 불리고 등 따습게 안락한 생활을 추구하려는 것이 우리네 보통 삶이 아닌가 싶다. 공자는 이러한 사정까지도 일찍이 살펴서 일러주었던 것인데, 오늘날 우리들은 지나치게 공자의 드높은 경지를 흉내 내거나 넘보려고 애쓰거나 아예 처음부터 포기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부자가 되는 일에 대하여 공자는 한 마디로 '정의로운 부자'를 추구할 수 있으면 하겠지만, 그것이 안 되는 바에야 부자보다는 정의를 선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유가에서는 대체로 이윤의 추구보다는 정의의 실현을 강조했던 것인데, 이후 유가가 '에헴'하는 봉건 예교의 관념론에 빠지면서 물질보다는 이상적인 정신세계를 추구할 것을 강조하다 보니 물질에 관해서는 지나치게 금기시하는 폐단을 낳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둘을 함께 아우른 정의로운 부자가 진정 가능하지 않은 것일까? 과거 우리나라가 IMF 위기에 처했던 경험을 통해서 배운 것이라면, 정치적인 민주화가 실현되지 않는 한 경제적인 성공 역시 절대 얻을 수 없다는 것이 아닐까 한다. 세계의 다른 개발도상국들이 사정은 조금씩 달랐지만, 우리가 흔히 말하는 중진국 수준에서 선진국의 문턱을 뛰어넘지 못하는 경우가 대다수인데, IMF 당시 우리가 좌절을 맛보고 얻은 교훈이라면, 경제적인 발전은 정치적인 수준과 보조를 맞추어야만 가능하다는 것이 아닐까 한다. 그런 의미에서 ‘정의로운 부자는 과연 가능할까’가 아니라 '정의로워야만 부자가 될 수 있는 것'이 증명된 것이 아닌가 한다. 실제로 정치적으로 민주화를 이 루지 못한 경제적인 부국은 없는 듯하다.
한편 우리가 IMF 이전 한창 부자의 길로 매진하는 것을 보고 세계 여러 나라에서 아시아의 4마리 용이네 어떠네 하면서 치켜세우고는 분석하기를 4마리 용들의 경제적인 성공은 유가(儒家)의 가부장적 가족주의 회사 경영 때문이라고 했다. 그런데 막상 IMF 위기를 맞고 좌초해 있을 때에는 오히려 거꾸로 유가식 가족 경영의 폐단으로 합리적이며 투명한 운영이 되지 못한 것으로 원인을 돌렸는데, 그것 역시 유가 사상의 폐단으로서 지연 혹은 혈연에 얽매여 불합리하게 경제를 운용한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것에서도 보지만 어느 것 하나도 완벽한 이념이나 주의는 없는 듯싶다. 다만 그것을 운영하는 주체인 인간에게 성공과 실패의 관건이 달려 있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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