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의 말씀, 논어(論語) - 정치(政治)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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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 공부/about 중국

공자의 말씀, 논어(論語) - 정치(政治) 1,2

by Life K-Drama 2022. 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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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바로 잡는 것

 

성인(聖人)이 세상에 오신 이유와 목적은 기본적으로는 인류의 구원에 있다고 하겠다. 석가도 예수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어지럽고 혼란스러운 사회에서 고통받는 이의 복음을 위한 것이다. 이에 공자 역시 당시 전쟁의 시대였던 춘추시대에 위정자들을 향해 외친 한마디는 바로 '사랑[仁]’과 ‘정의[義]의 실천이었다. 인과 의의 실현이야말로 공자가 밝힌 세상을 다스리는 정치 행위의 근본이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글에서는 그러한 공자의 정치사상을 살펴보고자 한다.

 

(1) 정치는 집안을 편히 하는 것에서부터

或謂孔子曰: “子室不爲政?” 子曰: “書云, ‘孝乎惟孝, 友于兄弟, 施 於有政.”是亦爲政, 奚其爲爲政?”(『論語·爲政)

혹위공자왈: “자해불위정?” 자왈: “서운, ‘효호유효, 우우형제, 시어 유정, 시역위정, 해기위위정?”(『논어 · 위정)

 

- 번역: 누군가가 공자에게 이르기를 “선생님께서는 어찌하여 정치를 하시지 않습니까?”라고 하자, 공자는 “『서경(書經)』에 효(孝)에 대하여 말하였는데, ‘효도하며, 형제끼리 우애로운 것을 정사에 베푼다.'라고 하였다. 이 역시 정사를 하는 것이니, 어찌 정치를 하는 것만이겠느냐?”라고 하셨다.

 

- 어휘 풀이

• 書(서) : 『서경(書經)』혹은 『상서(尙書)』를 말한다. 우(盧) 상(商), 주(周) 4대의 역사, 천문, 지리, 윤리 사상 등의 내용을 기록한 것으로, 본래 100편으로 공자가 편찬하였다고도 하는데, 현재 전하는 것은 58편뿐이다.

• 兄(형) : ‘형’ 자는 ‘입 구(口)+사람 인(心)’의 형태로서 사람 가운데 발언권[口]이 세다는 의미를 갖는다. 가부장적인 봉건예교를 바탕으로 하는 종법(宗法) 제도에서 형을 우선시하는 전통이 담겨 있는 글자이다.

 

- 해설: 『대학(大學)』에서 '큰 학문(大學)’의 길에 대하여 “격물(格物), 치지 (致知), 성의(誠意), 정심(正心), 수신(修身),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라고 말하였으니, 여기에서 군자의 최후 목적은 당연히 나라를 다스리고 세상을 올바르게 하는 것이라고 한 것이다. 공자는 자기의 사정을 미루어 남에게 사랑을 미친다는 의미의 “추기급인(推己及人)”이나 자기가 하고자 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미루지 말라는 뜻 의 “기소불욕물시어인(己所不欲勿施於人)”이라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사고방식이 오늘날 공자가 비난을 받는 이유이기도 한데, 이것은 어쨌거나 이 사회에서 늘 자신을 중심으로 생각하고자 하는 것이기 때문에 혈연, 지연과 같은 나쁜 병폐를 낳게 되었다고 할 수있다.

  물론 공자가 실제로 그러한 의도에서 말한 것은 아니며, 어디까지나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의식을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정치의 정(政)자가 ‘바를 정(正)+칠 복(攵)'인 만큼 일깨운다는 의미가 강하며, 세상을 옳게 다스리는 것 역시 자기의 수양으로부터 시작해서 가정 속에서 “부모 자식 사이에서는 사랑하고(父子有親)”, “형제 사이에는 서로 위아래를 지키는 가운데 우애롭고(長幼有序)”, “부부 사이에는 각자의 본분을 다함으로써 가정을 행복하게 꾸미는(夫婦有別)” 것과 같은 덕목을 중시하는 것이다. 이러한 것들부터 제대로 자리를 잘 잡음으로써 세상이 평안해지는 것이니, 이밖에 또 무엇이 세상을 다스리는 일이겠는가 반문한 것이다.

  이렇듯 공자의 윤리사상의 핵심인 인은 가족 간의 사랑의 방식을 일컬은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격물(格物), 치지(致知), 성의(誠意), 정심(正心), 수신(修身)”과 같이 자기 자신부터 잘 수양하는 것을 통해서 집안을 다스린다는 '제가(齊家)'에 이어서 치국(治國)과 평천하(平天下)를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한 대학(大學)의 8조목은 유가에서 말하는 군자의 학문 수양 방법론을 제시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유가에서 군자가 되기 위한 과정인 ‘내성외왕(聖王)'을 말한다. 즉 군자는 안으로는 스스로 성인이 되고자 힘쓰며, 성인의 단계에 오르고서는 밖으로 세상 다스리는 일로 완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도 공자는 바로 성인이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노력을 통해 다다르는 경지이며, 이것을 세상을 위해서 펼 줄 알아야 한다고 한 만큼 공자의 학문과 사상은 언제나 세상을 향해 있었다.

  그렇다면 유가에서는 어째서 이렇듯 가족 간의 관계를 중시할까? 그것은 중국의 농경문화 전통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농사라는 것은 혼자만의 힘보다는 가족 혹은 집단 간의 협동을 통해야만 하는 산업이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집안에서는 부모와 자식, 형제, 부부의 관계를, 집을 나서서는 벗이나 위아래 사람 간의 원만한 인간관계가 중시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원만한 인간관계란 바로 구성원 간의 질서를 잘 지키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며, 그러한 질서를 유지하게 하는 도덕적 품덕이 바로 예인 것이다.

 

 

(2) 정치는 덕과 예로써 펴야

子曰: “道之以政, 齊之以刑, 民免而無恥. 道之以德, 齊之以禮, 有耶 且格.”(『論語·爲政)

자왈: “도지이정, 제지이형, 민면이무치. 도지이덕, 제지이례, 유치 차격.”(『논어·위정)

 

- 번역: 선생님께서, “이끌기를 법령으로써 하고, 가지런히 하기를 형벌로써 하면 백성들은 형벌을 면하여서도 부끄러워함은 없을 것이다. 이끌기를 덕으로써 하고, 가지런히 하기를 예로써 하면 백성들은 부끄러워할 줄 알며 옳은 데로 나아갈 것이다.”라고 하셨다.

 

- 해설: 오늘날 나라를 다스리는 데에 법률과 형벌이 없다면 나라꼴이 과연 제대로 갖추어질까? 공자는 될 수 있다고 믿은 듯하다. 위정자가 덕과 예로써 다스리기만 하면 백성들은 스스로 옳은 데로 나아가게 되어 있다고 하니 말이다. 그러므로 백성들을 통치함에 있어서 법률과 형벌로서가 아니라 예와 덕으로써 백성 각자가 스스로 깨달을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것이 진정한 정치의 방도라고 여겼던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말하는 덕과 예는 무엇일까?

  덕(德)자는 사거리를 뜻하는 두인 변 ‘彳’, 바르다는 뜻의 ‘직(直)', 마음 심(心)'자가 합쳐져 만들어진 글자이다. 곧 사람이 큰 거리에 서서 어디로 가야 옳은가를 궁리하는 형상이다. 즉 덕이란 사회에서 올바르게 살아가고자 하는 마음 자세를 말하는 것으로서 글자 자체에 옳고 그름의 뜻을 본디부터 가지고 있는 글자는 아니다. 오늘날 우리가 쓰는 말 가운데 '악덕(惡德)이라는 말에서도 보듯이 악덕이란 나쁜 삶의 자세를 말하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우리들은 흔히 마음씨 좋고 여유로운 삶의 태도를 일컬어서 덕이 있다고들 한다. 그 이유는 공자가 위에서 말한 것처럼 유가(儒家)에서는 너그럽게 남을 이해하고 용서하려는 삶의 자세를 중시하였기 때문에 그렇게 고정되어 버린 것일 뿐이다. 만약에 우리 사회가 기독교의 영향 아래에서 발전한 사회였다면 아마도 기독교에서 말하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신봉하는 가운데 이웃에 사랑과 봉사하는 삶의 태도가 바로 덕스러운 것이라고 말하였을 것이고, 혹 도가(道家) 전통의 사회를 살았다면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이치를 몸소 실천하는 삶을 덕(德)이 있다고 여겼을 것이다.

  이것과 더불어 예(禮)를 안다고 하는 것은 바로 당시 춘추시대가 각 제후국들의 패권다툼으로 인해 피폐해진 사회 속에서 각자 제자리를 잘 지키며 남을 넘보지 말아야 한다는 의식을 담고 있다.

  예(禮)자는 본디 제사지내기 위하여 무언가를 보인다는 뜻의 '시(示)'자와, 바구니에 제물을 가득 담아 제기에 올려놓았다는 뜻의 '풍(導)'자가 합해져 있듯이 '예(禮)'란 풍성하게 제물을 차려 놓고 제시는 올리는 것을 그린 것이다. 그러한 제사 의식에서 가장 중시하는 덕목이란 바로 제사를 올리는 이들 사이의 질서가 무엇보다도 중요했던 것인 만큼 예는 바로 고대 중국의 종법(宗法)사회에서 한 집안이나 나라에서 혼란을 막는 도덕적 품덕을 말하는 것으로 곧 질서라는 뜻이다. 이것은 봉건제를 채택했던 주(周) 나라가 차츰 봉건 질서가 흐트러지면서 사회가 문란해지고 각자 처하거나 맡은 바의 임무를 접어둔 채 질서를 문란하게 하던 사회 풍조를 바로잡기 위한 역할을 맡았던 것이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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