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의 말씀, 논어(論語) - 학습(學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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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 공부/about 중국

공자의 말씀, 논어(論語) - 학습(學習)

by Life K-Drama 2022. 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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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공부하자!

우리는 어째서 공부하는 것에 그토록 목숨을 거는 걸까? 바로 우리 사회의 전통이 공부가 그 사람 인생의 대부분을 결정하는 방식으로 발전을 해 왔기 때문이다. 그만큼 우리 역사 전통이 지적(知的)이었다고나 할까? 그런데 이 전통은 바로 공자에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1) 공부가 기쁜 이유?
子曰: 學而時習之, 不亦說好! [論語-學而]
자왈: 학이시습지, 불역열호! [논어=학이]

- 번역: 선생님께서는 “배우고 그것을 늘 익히면 참으로 기쁘지 않은가!”라고 하셨다.

어휘 풀이
·不亦...好(불역...호): ‘참으로(역시)... 하지 않겠는가’는 뜻으로 반어적인 수사기법에 쓰는 상투어.
·時(시): ‘때 時(시)’자는 흔히 ‘때때로’라고 새기는데, 여기서는 ‘늘’, ‘항상’의 뜻.

해설: 이 구절은 [논어]의 첫 장인 [학이]장 첫 구절이다. 항상 배우고 익히라는 이 말은 아마도 공자가 가장 절실하게 하고 싶었던 말이 아닌가 짐작된다. 공자 자신도 그랬었지만, 인간은 누구나 후천적인 학습과 노력을 통해서 자신의 인생을 개척해 나아갈 수 있는 존재라는 뜻에서 한 말이기도 하다.
주(周)나라는 봉건사회로서 사람은 태어나면서 인생의 갈 길이 대부분 결정이 나던 때였는데, 공자가 태어난 때는 그런 봉건 질서가 무너지고 새로운 이념과 가치관이 나타나던 시대였다. 그렇게 때문에 어느 때보다도 개인의 능력이 자신의 인생과 장래를 경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공자가 귀족의 자손이기는 했지만 집안은 이미 몰락한 상태였고, 70세가 다된 아버지의 아들로 태어나 3살 때 그나마 아버지를 여의고 게다가 후실의 아들로서 별다른 능력이나 후원이 없던 상황에서 어쨌거나 오늘날까지 ‘인류의 스승’으로 추앙을 받는 성인의 자리에까지 올랐으니 말이다. 이것은 바로 공자가 학문을 열심히 닦아서 이루어낸 결과라고 말할 수 있으며, 마치 불교에서 석가가 깨달음을 통해서 성불(成佛)하였다는 것처럼 성인의 길로 간 것이 서로 비슷한 측면이 있다. 이것은 유가(儒家)에서 누구나 학문을 열심히 닦으면 성인의 길을 완성할 수 있다고 우리 모두에게 희망을 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실제로 오늘날까지도 학문을 열심히 닦는 것이야말로 개인적인 출세와 영광을 위해서도 가장 안정되고 확실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공부하는 것이 정말 기쁠까? 공자야 성인이니까 그럴 수 있겠거니 하면 그만이지만, 공자 스스로는 “생이지지(生而知之)” 곧 나면서부터 모든 이치를 깨달은 성인이기를 자처하지 않았고, 그냥 늘 힘쓸 뿐이라고 했던 것처럼 아마도 공자 역시 공부하는 자체가 즐겁기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무래도 노는 것이 재미있지 어찌 공부하는 것이 즐거울까? 다만 공부를 통해서 얻어지는 깨달음과 대체로 공부를 통해 얻어지는 결과가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영광스럽게 된다는 것을 알고 열심히 노력하다 보면 기쁘고도 행복하게 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것이다.
이 구절에서 우리가 흔히 배우고 익힌다는 의미로 이해하는 ‘학습(學習)’이라는 말의 어원을 알 수 있다. 즉 배운다는 ‘학(學)’의 본디 글자 뜻은 아이가 책상에 앉아서 양손으로 효를 잡고서 점을 치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서 인류의 지식수준이 매우 낮아 묻고 알아볼 만한 대상이 하늘뿐이었을 때에 만들어진 글자이다. 즉 ‘학(學)’자는 몰랐던 사실에 대해 알게 되는 과정을 말하며, ‘습(習)’은 날개 달린 새가 하늘에서 열심히 날려고 애쓰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그러므로 학습이란 말은 몰랐던 것을 익히고 [學], 알고 있는 것을 잊지 않도록 열심히 복습[習]한다는 뜻이다.


(2) 무엇을 배울 것인가?
子曰: “溫故而知新, 可以爲師矣.” [論語-爲政]
자왈: “온고이지신, 가이위사의.” [논어-위정]

번역: 선생님께서는 “옛 것을 잘 되새겨서 새것을 알면, 스승이 될 수 있다.”라고 하셨다.

어휘 풀이
·溫古(온고): 마치 이미 먹었던 음식을 다시 따뜻하게 데워서 맛있게 먹듯이 이미 배운 학문 지식을 잘 되새겨서 그 깊은 뜻을 다시금 음미해 본다는 의미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지신(知新)’ 즉 새로운 이해와 지식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듯 공자는 새로운 지식의 습득조차도 옛 것의 습득을 통한다고 했던 것이다.

해설: [술이(述而)]편에서 “옛 것을 믿고 좋아한다.(신이호고-信而好古)”라고 했는데, 오늘날 이러한 공자의 학문 태도를 부정적으로 보아서 유가가 지나치게 과거 지향주의라고 비난하는 이들이 있기도 하다. 이미 지나간 어제보다는 앞으로 있을 내일을 보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공자의 유가 사상이 현실적인 합리주의를 지향하기 때문인 것이지 단순히 과거에 대한 향수에 빠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런 것이 아니다. 어제가 없는 오늘이 있을 수 없고, 오늘이 없는 내일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가에서는 역사의 진실이 거듭되는 것을 거울 삼기 위하여 [춘추(春秋)]나 [서경(書經)]같은 역사의 기술이나 학습을 중시했던 것이다. 다만 이후 시대에서 유가가 봉건예교화하면서 과거 지향적인 폐단에 빠져버려 고리타분해진 경향이 있을 따름인데, 이러한 사실을 가지고 확대 해석하는 것은 유가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아니다.
공자는 72명의 수제자와 3,000명이나 되는 일반 제자들을 교육하여 그의 사상을 전파하였다. 공자는 인(仁)의 실천을 위해서는 전통적인 사회규범으로서의 예(禮)라는 형식을 익혀야 하며, 학문 수양에도 힘쓸 것을 특히 중시했다. 이렇듯 유교적 전통과 학문을 익히는 것을 통해서 인의 사회성과 객관성을 굳건히 할 수 있다고 여겼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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