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선구자 맹자(孟子) - 정치(政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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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 공부/about 중국

시대의 선구자 맹자(孟子) - 정치(政治)

by Life K-Drama 2022. 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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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왕다운 정치(政治)에 대하여

 

[맹자]에는 특히 정치에 대한 이야기가 많은데, 백성의 행복이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통치자가 사랑[仁]과 정의[義]로 나라를 다스리지 않을 때는 천명(天命)이 그에게서 물러난 것이므로 그런 통치자는 마땅히 제거되어야 한다는 이른바 역성혁명(易姓革命)을 긍정한 대목이 매우 급진적인 논의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

 

 

(1)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으로

人皆有不忍人之心. 先王有不忍人之心, 斯有不忍人之政矣. 以不忍人之心行不忍人之政, 治天下可運於掌上. [孟子-公孫丑上]

인개유불인인지신. 선왕유불인인지심, 사유불인인지정의. 이불인인지심행불인인지정, 치천하가운어장상. [맹자-공손추상]

 

번역:

사람은 남에게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선왕께서도 남에게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을 가지고 계셔서 이에 남에게 차마 하지는 못하는 정사를 펴신 것이다. 남에게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으로 남에게 차마 하지 못하는 정치를 펴면 세상을 다스리는 것이 마치 손바닥 위에서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

 

어휘 풀이:

• 不人之心(불인지심): 이 말은 한자어 가운데 참으로 독특하게 우리말로 변형된 말 가운데 하나이다. 직역을 하면 ‘참지 않는 마음’인데, 이것은 어떤 일에 참지 못하고 불끈불끈 성낸다는 의미가 아니라, 세상의 부조리나 남의 불행을 보고 참지 못한다는 의미로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이라고 해석한다.

 

해설:

불인지심(不人之心)은 곧 남의 고토이나 어려움을 차마 그냥 보아 넘길 수 없는 마음으로 성선의 실마리인 측은지심과도 통하는 것으로서 임금 된 이가 가져야 할 기본적인 마음이라는 것이다. 아울러서 이를 실천하는 이야말로 맹자가 말한 왕도(王道)를 실현하는 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와 반대로 “힘으로ㅆ 인(仁)을 가장하려는 이는 패자(覇者)이다. ... 힘으로써 남을 복종시키는 것은 마음으로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힘이 부족해서이다. 덕으로써 남을 복종시키는 것은 마음속으로 기뻐하여 참으로 복종하는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맹자는 왕도와 패도를 나누어 왕다운 왕과 그렇지 못한 왕을 구별하였다.

그리고 왕도와 패도는 단지 왕이 백성을 어찌 다르시는가 하는 그 자체보다는 그러한 정치 행위가 백성들을 위한 정치 즉 민본주의(民本主義)를 지향하는 것이 왕도정치이며, 패도정치는 왕의 개인적인 욕심과 명예만을 위한 정치행위라고 정의하였다.

 

 

(2) 백성을 근본으로 삼는 민본주의(民本主義)

爲民上而不與民同樂者, 亦非也. 樂民之樂者, 民亦樂基樂. 憂民之憂者, 民亦憂基憂. 樂以天下, 憂以天下, 然而不王者, 未之有也. [孟子-梁惠王下]

위민상이불여민동락자, 역비야. 락민지락자, 민역락기락. 우민지우자, 민역우기우. 락이천하, 우이천하, 연이불왕자, 미지유야. [맹자-양혜왕하]

 

번역:

백성의 윗사람이 되어서 백성과 즐거움을 함께 하지 않는 것 역시 잘못입니다. 백성들의 즐거움을 즐기는 이는, 백성들 역시 임금이 즐기는 것을 즐깁니다. 백성들의 걱정을 걱정하는 이는 백성들 또한 임금의 걱정을 걱정합니다. 즐기기를 온 세상으로 하고, 걱정하기를 온 세상으로써 하는데도 왕 노릇 못한 이는 아직 없습니다.

 

어휘 풀이:

• 왕(王): 본디 명사인 왕(王) 자는(王) 여기에서 동사로 쓰여 ‘왕 노릇하다’로 풀이한다.

 

해설:

이것이 바로 맹자 민본사상(民本思想)의 실천 방안이랄 수 있는 여민동락(與民同樂)을 말한 것이다. 임금 된 이는 백성에 대하여 마치 어버이와 같고 백성은 임금을 제 부모와 같은 존재로 여기게 된다면, 임금과 신하 사이에 도덕 규율인 정의(正義) 이외에 부모 자식 간의 친애(親愛)로 나라를 다스려 나아가게 될 것이니 어느 누군들 왕 노릇 못하는 이가 있겠는가 강조한다.

이에 덧붙여서 맹자는 “백성이 가장 귀하며, 조정이 그다음이며,, 임금이 가장 가볍다”라고 하였고, 거꾸로 “임금이 신하를 흑이나 쓰레기처럼 하찮게 본다면, 신하는 임금을 원수 보듯이 할 것이다.”라고 한 것처럼, 임금은 백성을 받드는 정치를 해야 한다고 했다.

이것이 공자가 말한 사랑의 정치인데, 공자가 살았던 춘추시대만 하더라도 주(周) 왕실이 쇠하였다고 하지만, 제후 가운데 실질적인 패권을 잡은 이 역시 존왕양이(尊王攘夷)를 구호로 삼아 어찌 되었든지 간에 명분과 도리를 중시하는 정치를 행하였었는데, 맹자의 전국시대에는 제후들이 공공연하게 함부로 왕(王)이라 칭하며 전횡을 저지르던 때였다. 그러니 각 제후들은 사사로운 욕심과 명예를 위해서 전쟁을 일으키고 백성들을 착취하는 폭정을 일삼았던 것이다. 그런 가운데 맹자는 왕이라고 하는 이는 누구보다도 백성을 위할 줄 아는 정치를 행만 한다고 했으니, 맹자의 꿋꿋함을 여기에서 잘 살필 수 있다.

 

 

(3) 그래도 안 되면 뒤집어야, 혁명(革命)

齊宣王問曰: “湯放傑, 武王伐紂, 有諸.” 孟子對曰: “於傳有之.” 曰: “臣弑基君可乎” 曰: “賊仁者謂之賊, 賊義者謂之殘. 殘賊之人謂之一夫. 聞誅一夫紂矣. 未聞弑君也.” [孟子-梁惠王下]

제선왕문왈: “탕방걸, 무왕벌주, 유저.” 맹자대왈: “어전유지.” 왈: “신시기군가호” 왈: “적인자위지적, 적의자위지잔. 잔적지인위지일부. 문주일부주의. 미문시군야.” [맹자-양혜왕하]

 

번역:

제 선왕이 “탕왕(湯王)이 걸왕(桀王)을 몰아내고, 무왕(武王)이 주왕(紂王)을 정벌하였다고 하는데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라고 물었다. 맹자께서 “기록에 있습니다”라고 대답하셨다. “신하가 임금을 시해하는 것이 됩니까?”라고 물었다. “인(仁)을 해치는 자를 도적이라 하고, 의(義)를 해치는 이를 잔(殘)이라고 하는데, 잔적(殘賊)한 이는 ‘한 사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한 사내 주(紂)를 처치하였다는 말은 들었으나, 임금을 시해했다는 말은 듣지 못했습니다.”라고 대답하셨다.

 

어휘 풀이:

• 諸(저): ‘모두’ ‘여러’의 뜻으로는 ‘제’로 읽지만, 어조사일 때에는 ‘저’로 읽는다.

 

- 해설:

이것이 사랑과 정의를 실천하지 못하는 임금은 내쫓아야 한다는 맹자의 혁명사상을 말한 것이다. 본디 왕(王) 자는(王)자는 ‘도끼’를 형상화한 것으로 힘이 센 자로서 권력을 잡은 이를 의미하였는데, 이후로는 좀 더 그럴듯한 의미에서 왕 된 자는 하늘의 명을 받아 이 땅에 군림하는 이라는 의미로 변하였다. 그래서 하늘의 뜻이고 명령인 천명(天命)을 대신 편다는 뜻에서 왕을 천자(天子)라고도 부르는 것이다. 그런데 그 천자가 자신의 직무를 외면한다면 당연히 하늘은 그를 폐하고 다른 이를 대신 세워야 한다는 것이 바로 유가의 천명(天命) 사상이다.(天命)사상이다. 그렇다면 천명의 전정한 뜻이 어떤 것이며, 누구에게 있는지를 과연 어떻게 아는 것일까? 바로 백성들이 그 임금에 대해서 등을 돌렸다면 그 임금은 천명을 잃은 것이며, 백성의 마음이 쏠리는 곳에 바로 천명이 정해졌다고 하겠는데, 맹자는 그를 하늘의 관리라는 뜻으로 천리(天吏)라고 했다.

그렇다고 해서 누구나 혁명을 일으키라는 것이 아니다. [만장하(萬章下)]편에서 “임금이 잘못하면 간언을 하고, 거듭하였는데도 듣지 않으면, 자리에서 폐한다.”라고 하였듯이 임금에게 간언을 하는 것이 우선이며, 임금을 몰아내는 주체는 반드시 천리(天吏) 여야(天吏) 한다고 했다. 그래서 “심동이 연나라를 쳐도 되겠냐고 묻기에, 내가 ‘된다’고 대답했더니, 그가 그렇다고 여겨서 공격했다. 그가 만약에 ‘누가 쳐야 되겠습니까’라고 물었다면 나는 ‘천리(天吏)가 칠 수 있다’라고 했을 것이다.”라고 했듯이, 누구나 군대를 일으켜 임금을 치는 것이 아니라 백성들의 마음을 충분히 얻은 다음 혁명이 가능한 것이라고 했으니, 혁명이란 함부로 가벼이 벌일 일이 아니라고 했다. 그렇지만 어느 시대든지 누가 진정한 천리인지 아닌지는 혁명의 결과가 정해주기 마련이니, 이 또한 쉽게 가눌 수 있는 문제가 아닌 듯하다.

여기에서 공자를 계승하였다고 스스로 자처한 맹자의 글들을 읽다 보면 맹자는 공자와 참으로 다른 면모를 보인다. 공자가 한 인간으로서 지녀야 할 덕목을 넌지시 여유롭게 제시하여 스스로 올바른 길을 깨닫도록 하는 데 비하여 맹자는 기세 좋게 자신의 논의 주정을 펴곤 한다. 특히 그의 정치사상 가운데 당시 서슬이 시퍼렇던 전제 왕권시대에 혁명을 긍정하는 말을 서슴없이 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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